모두의창업 2기 합격 후, 회사를 다니며 창업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모두의창업 2기 1라운드 합격, 그리고 회사를 다니며 창업한다는 고민
모두의창업 2기 1라운드에 합격했습니다. 기쁜 소식이지만, 막상 다음 단계를 생각하니 현실적인 고민도 함께 생겼습니다. 저는 현재 회사에 다니고 있고, 계약직이라는 고용 형태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재관리와 WIR, 품질관리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고 있습니다. 기본 기능은 실제로 작동하고 있고, 아직 보완해야 할 기능도 남아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독립적으로 창업해야 할까요? 아니면 회사에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함께 실증하거나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방법도 있을까요?
조금 더 고민해 보니 선택지는 퇴사와 창업,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사를 잠재 고객으로 만들 수도 있고, 현장 실증 파트너로 협력할 수도 있으며, 성과가 확인된 후 별도 법인을 함께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 더 멋져 보이느냐가 아니라, 현재 가진 자원과 위험을 고려해 어떤 순서로 움직이느냐였습니다.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제품으로 만들기
반도체 배관 제작 현장의 업무는 하나의 프로그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자재 입고와 출고, 실제 재고 확인, 도면과 스풀 정보, 용접 및 검사 진행 상황, WIR 문서, 출고 기록 등이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업무에서는 엑셀과 종이 문서, 여러 파일에 정보가 나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담당자는 필요한 정보를 찾고 대조하고, 빠진 기록이 없는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지점은 단순히 종이 문서를 화면으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현장 데이터를 연결해 반복적인 확인 작업을 줄이는 것입니다. 자재관리에서 시작하더라도 제작과 검사 기록이 연결되면, 어느 스풀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거나 도면 변경의 영향을 검토하는 일이 조금 더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가능성만으로 사업성이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실제로 사용하고, 기존 방식과 비교해 시간이 줄었는지, 누락이나 불일치가 줄었는지, 사용자가 계속 쓰고 싶어 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기능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문제를 해결하느냐입니다.
회사와 협업하는 세 가지 방법
처음에는 회사에 창업 아이디어를 공개하고 공동사업을 제안하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곧바로 공동창업자로 만드는 것보다, 작은 협업부터 검증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결론에 가까워졌습니다.
첫 번째는 실증 파트너입니다. 회사와 협의해 자재관리나 검사 문서 관리처럼 범위가 명확한 업무 하나를 선택하고, 제한된 기간 동안 개선 효과를 측정합니다. 회사는 승인된 테스트 환경과 담당자, 현장 피드백을 제공하고, 개발자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준비합니다. 이 단계의 목적은 대규모 도입이 아니라 실제 효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유료 도입 또는 개발 계약입니다. 실증 결과가 의미 있고 회사가 제품을 계속 사용하고 싶어 한다면, 사용료나 추가 개발비, 유지보수 범위를 협의할 수 있습니다. 무상 테스트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피하고, 실제 구매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공동사업 또는 별도 법인입니다. 회사가 투자금뿐 아니라 전담 인력, 영업망, 장기 구매 약정 등 구체적인 기여를 제시하고 제품의 성장 가능성도 확인됐다면 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분부터 정하는 것은 순서가 아닙니다. 회사와 제가 각각 무엇을 제공하고 어떤 책임을 지는지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왜 처음부터 공동창업을 제안하지 않을까
회사가 현장 테스트를 허용하는 것과 사업 전체에 투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정입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써보겠다는 관심을 투자 의사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담당자가 있는지, 테스트에 필요한 자료를 공식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 예산을 누가 승인하는지, 실증 이후 구매를 결정할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회사에 처음 이야기할 때도 “제가 창업하려고 하니 투자해 주세요”라고 시작하기보다, 현장에서 반복되는 업무를 디지털화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실제 개선 효과를 검증할 수 있을지 문의하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회사가 관심을 보인다면 그때 실증 범위와 사업화 가능성을 구체화하면 됩니다.
회사 내부에서 누구에게 먼저 이야기할지도 중요합니다. 업무 개선을 검토할 수 있는 직속 상사나 관련 책임자와 문제를 논의하고, 예산과 사업화가 필요한 단계에서 의사결정권자에게 제안하는 방식이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회사 조직과 승인 절차에 따라 적절한 경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계약직이라는 현실과 먼저 확인해야 할 것
이번 고민에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은 현재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회사와의 관계가 아직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개인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계약서에 겸업이나 지식재산권 관련 제한 또는 사전 승인 조항이 있다면,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사업 활동을 확대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에서 겸업 승인 대상, 비밀유지 의무, 업무상 개발물의 귀속 관련 조항을 확인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노무 또는 지식재산 전문가에게 실제 문구를 검토받는 편이 좋습니다. 계약에 제한 조항이 있다고 해서 모든 개인 개발물이 자동으로 회사 소유가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개인 시간에 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권리가 개인에게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계약 내용과 개발 경위가 중요합니다.
기존 프로그램의 개발 이력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Git 커밋, 기획 문서, 개발 시점, 개인 비용 지출 내역 등을 목록화하고, 회사 업무와 관련해 개발한 부분과 개인적으로 진행한 부분을 구분해 두는 것입니다. 이는 회사와 대립하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서로의 권리와 책임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입니다.
또한 회사의 도면, 검사 기록, 자재 내역, 고객 정보 등은 제품 코드와 별개의 문제입니다. 회사의 승인 없이 자료를 외부 서비스에 업로드하거나 개인 시스템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실증이 필요하다면 승인된 자료와 보안 범위 안에서 진행하고, 가능하면 가상 데이터나 익명화된 샘플로 먼저 기능을 검증해야 합니다.
기존 제품의 권리와 사업의 독립성
회사가 협업에 관심을 보이더라도, 기존 제품과 신규 개발물, 회사 데이터, 사용권을 구분해 합의해야 합니다.
이미 개발해 둔 범용 기능과 공통 모듈은 기존 제품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반면 회사의 특정 업무에 맞춰 새로 개발하는 기능은 비용 부담과 계약 조건에 따라 별도의 권리 합의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회사의 자료는 또 다른 영역이므로 사용 목적, 접근 권한, 보관 기간, 삭제 절차 등을 정해야 합니다.
특히 회사가 제품을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싶어 한다면 독점권의 대상과 기간, 그에 대한 대가를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회사가 테스트 환경만 제공하는 경우와 개발비, 전담 인력, 영업망까지 투입하는 경우는 기여 수준이 다릅니다. 그 차이를 무시한 채 지분이나 권리를 먼저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별도 법인을 만들게 된다면 투자금과 지분율뿐 아니라 대표이사와 의사결정권, 추가 투자에 따른 지분 희석, 사업 철수 시 처리, 소프트웨어 사용권, 외부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범위도 정해야 합니다. 법인 설립 자체가 사업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할과 권리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인을 만들면 갈등이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30일 동안 실행할 계획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거나 법인을 설립하는 대신, 앞으로 한 달은 협업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간으로 삼으려 합니다.
- 첫째 주: 계약서와 겸업 승인 조건을 확인하고, 기존 개발물의 이력과 자료를 정리합니다. 동시에 모두의창업 운영기관에 재직 상태에서의 참여 조건, 사업자등록 시점, 지원금 사용 기준을 확인합니다.
- 둘째 주: 회사가 이해하기 쉬운 한 페이지 제안서를 작성합니다. 자재관리 또는 WIR 중 하나를 선택하고, 현재 업무의 문제와 실증 범위, 측정 지표를 명확히 합니다.
- 둘째~셋째 주: 회사의 적절한 담당자에게 업무 개선과 실증 가능성을 문의합니다. 필요한 승인 절차가 있다면 그 절차를 따릅니다.
- 셋째~넷째 주: 관심이 확인되면 데이터 사용 범위, 비용 부담, 기존 제품의 권리, 신규 개발물, 외부 판매 가능성을 서면으로 협의합니다.
- 넷째 주: 실제로 진전된 내용에 따라 실증 협약, 유료 도입, 공동사업 협의 중 다음 단계를 결정합니다.
이 일정의 목적은 한 달 안에 반드시 법인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가 협업할 의사가 있는지, 협업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내부 승인에 시간이 걸린다면 일정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는 기준
이 사업이 잘될 가능성이 있는지는 거대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지보다 작은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지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 현장 사용자가 반복해서 사용할 만큼 업무가 편해졌는가?
- 처리시간, 누락 기록, 데이터 불일치 등 측정 가능한 변화가 있는가?
- 회사가 실증 이후 실제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가?
- 다른 제작 공장이나 협력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제품을 일반화할 수 있는가?
- 특정 회사의 요구에만 묶이지 않고 독립적인 제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회사와의 협업은 첫 고객 확보와 시장 진입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도 사업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현장에서 문제를 검증하고, 독립적인 고객을 찾는 경로가 남아 있습니다.
마무리: 회사를 설득하는 것보다 먼저 사업의 구조를 설계하기
모두의창업 2기 1라운드 합격은 새로운 기회입니다. 하지만 합격 자체가 사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현재 직장을 유지하면서 제품을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되, 회사와의 관계와 계약 조건을 무시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게 가장 합리적인 방향은 독립적인 제품 개발을 이어가면서 회사와 실증 협업을 타진하고, 실제 사용과 유료 도입 가능성이 확인된 뒤 공동사업이나 별도 법인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회사가 첫 고객이자 전략적 파트너가 된다면 초기 시장 진입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작 현장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반도체 배관 제작과 품질관리 업무를 위한 전문 소프트웨어로 확장할 가능성도 생깁니다.
다만 그 가능성은 아직 검증해야 할 가설입니다. 먼저 해결할 문제 하나를 선택하고, 현장에서 효과를 측정하고, 고객이 비용을 지불할 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
창업은 무조건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됩니다. 때로는 지금 가진 현장 경험과 작동하는 제품을 바탕으로, 현재의 환경에서 사업의 첫 번째 증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현재 고민과 실행 방향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실제 회사와의 협업이나 권리 관계는 계약 내용, 내부 승인, 실증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